본문 바로가기
  •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bns news

“이승만 기리는 일, 하와이 동포가 빠질 순 없죠” 기념관 3만달러 기부

by 0427 zion 2023. 9. 25.

“이승만 기리는 일, 하와이 동포가 빠질 순 없죠” 기념관 3만달러 기부

입력 2023.09.25. 03:14업데이트 2023.09.25. 06:14
 
 
 
2
 
 
작년 7월 ‘이승만 박사 서거 57주기 추모 행사’가 이 전 대통령의 동상이 있는 하와이 한인기독교회에서 열렸다. 한인기독교회는 1918년 이 전 대통령의 주도로 설립됐으며 헌금을 모아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소장(앞줄 가운데)을 비롯해 하와이 교민들이 참석해 이 전 대통령의 뜻을 기렸다./건국대통령이승만재단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는 일에 하와이 동포들이 빠질 순 없습니다. 최근 초대형 산불로 하와이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흔쾌히 정성이 모였습니다.”

하와이 동포 사회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위해 지난 22일 (재)이승만대통령 기념재단에 3만 달러(약 4000만원)를 기부했다. 해외 동포로는 첫 사례로, 지난 18일 공식 모금 운동을 시작해 단 3일 만에 걷힌 돈이다. 하와이 한인회와 하와이의 민간단체 ‘건국대통령이승만재단’ 등 각종 단체와 교민들이 참여했다. 지난 8월 발생한 마우이섬 초대형 산불 여파로 하와이 전체가 뒤숭숭한 상황이었지만 한국에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추진 소식이 전해지자 일사천리로 모금 운동에 착수했다. 한 교민은 “향후 최대 5만 달러를 추가로 기부하겠다”고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향한 하와이 한인들의 마음은 각별하다. 이 전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26년간 벌였고, 4·19 혁명으로 인한 하야 후 다시 하와이로 돌아와 눈감을 때까지 5년간 지냈다. 그의 90년 생애 중 3분의 1인 31년을 보낸 ‘제2의 고향’이다. 이서영 주호놀룰루 총영사는 “하와이는 이승만 대통령이 애국지사들과 ‘대한민국’의 독립과 번영을 위해 힘썼던 역사의 현장”이라면서 “하와이 교민들의 정성이 국내외 동포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1916년 12월 25일 하와이 호놀룰루시 인근에서 여학생 기숙사 건설을 위한 땅 고르기 작업에 나선 이승만(흰 점선) 전 대통령과 하와이 교포들. 오른쪽에서 넷째가 이 전 대통령이다. 오늘날 학교 부지엔 ‘한국 학교’를 의미하는 ‘쿨라 콜레아(Kula Kolea)’가 도로명으로 남아 있다./기파랑 제공

하와이는 한인들의 미국 이민 시초가 된 곳이다. 120년 전인 1903년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한인 102명이 상륙하면서 한인의 미국 이민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 하와이에 발을 디딘 한인들은 사탕수수밭에서 힘겨운 노동을 하는 상황에서도 돈을 모아 나라의 독립을 위해 기부했다. 하와이 이민 1세대들은 땡볕 아래 사탕수수 농장에서 백인 농장주의 욕설과 채찍질을 감당하며 이 섬에 뿌리내렸다. 노예 수준의 저임금을 받았지만 그 돈을 모아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 약 200만달러를 지원해 이봉창·윤봉길 의사 의거를 도왔다. 임시정부 재정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규모였다. 안중근 의사의 재판 경비도 하와이 교민들이 댔다. 현재 하와이 인구 140만명 중 약 5%가 한국계다.

 
 

서른여덟 독립운동가 이승만은 1913년 2월 호놀룰루에 와서 동포 5000명과 함께 ‘대한민국’ 건국을 준비했다. 교육자이자 언론 출판인, 기업인 등 여러 역할을 했고, 이 경험은 그가 1948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자마자 의무교육과 농지개혁 등 수많은 정책에 반영시켰다. 특히 교육이 독립의 근본이라고 믿었던 이 전 대통령은 남녀공학인 ‘한인기독학원’을 설립하고 사탕수수밭 한인 노동자들의 자녀를 세계 시민으로 길러내기 위해 애썼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그는 하와이 동포들과 교감했고,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조국을 재건할 인재 양성을 위해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 같은 학교가 필요하다”고 뜻을 피력하자 하와이 동포들이 한인기독학원 부지를 매각해 설립 자금을 보탰다. 그 학교 터는 현재 ‘쿨라 콜레아(Kula Kolea)’라는 거리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1954년 세워진 학교가 인하공대로, ‘인천’과 ‘하와이’의 머리글자를 따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이름을 지었다.

하와이 동포들은 이 전 대통령 하야 후에도 그를 초청해 생을 마칠 때까지 생활비를 다 댔을 만큼 이승만의 영원한 우군이자 동지로 남았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기념관 건립 사업에 동참하며 뜻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