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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보다 더한 폐허… “사람 깔려 있다” 신고 잇따라

0427 zion 2024. 1. 4. 08:43

전쟁터보다 더한 폐허… “사람 깔려 있다” 신고 잇따라

지진 강타한 일본 와지마市 르포

와지마시(이시카와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4.01.04. 03:42업데이트 2024.01.04.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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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市) 일대가 쑥대밭처럼 변해 있다. 1일 규모 7.6 강진과 이에 따른 화재로 마을 건물 대부분이 소실됐다. /성호철 특파원

3일 오후 2시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市) 가와이마치의 건물 붕괴 현장. 이틀 전 강진이 일어날 때 5층 높이 건물이 지반에서 통째로 뽑혀 옆으로 누워 있었다. 누군가 휙 뽑은 뒤 건물 옆을 아래로 하고 땅으로 메다꽂은 것 같았다. 사람들이 바람을 쐬면서 커피를 마시거나 전망을 즐겼을 옥상 난간이 바닥으로 고꾸라져 코앞에 있었다. 규모 7.6의 강진이 만들어낸 비현실적인 광경 속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필사적 구조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소방대원 세 명이 무너진 건물 아래로 들어가 드릴로 구조물을 잘라내는 동안 건물 주변에는 40여 명이 추가 붕괴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현장을 지켜보던 한 70대 주민이 말했다.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이 ‘꽈당’이 아니었어요. 옆으로 천천히 넘어졌어요. 이자카야(선술집) 주인 어머니와 아들이 깔려있어요. 어제 딸은 다행히 구출됐는데….” 현장을 오가는 소방관들은 마이크를 들이대는 취재진 질문에 하나같이 침묵했고, 자동차의 날카로운 경적만이 적막을 깰 뿐이었다.

고요하고 평화롭던 가와이마치의 중심가는 이번 지진의 직격탄을 맞으며 마치 폭격을 맞은 전쟁터처럼 변했다. 가옥의 절반은 무너져내려 형체를 파악하기 어려웠고, 무너진 건물 파편이 쌓이고 또 쌓이면서 골목길 곳곳을 산더미처럼 덮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73명. 이 중 절반 이상인 39명이 가와이마치가 있는 와지마에서 나왔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 사람이 깔려있다는 신고가 잇따르면서 곳곳에서 인명 구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생존자가 구출됐다는 낭보는 좀처럼 전해지지 않고 있다.

7층 건물이 통째로 쓰러진 모습. /성호철 특파원

구조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건물 건너편에선 ‘삐익’ 하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끊기지 않고 울리고 있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가 주차된 자동차를 덮치며 핸들을 짓눌러 경적이 울린 것처럼 보였다. 인근을 지나던 주민이 “마치 지진을 두려워하라는 경보 같아 끔찍하다”고 했다. 그 순간 주변이 흔들렸다. 여진이 온 것이다.

무너진 5층 건물에서 도보로 20분쯤 떨어진 ’아사이치(아침 시장)’는 폭탄을 맞은 듯 폐허로 변해있었다. 이곳이 생선·건어물·농산품·옷 등을 팔며 주민들의 아침을 깨우던 1000년 역사의 전통 시장이자 관광 명소였다는 걸 짐작하기 어려웠다. 1일 강진이 발생할 때 불까지 번지면서 주택과 상점 등 건물 200채가 잿더미가 됐다. 목조 가옥은 완전히 사라졌고, 콘크리트 건물은 앙상한 뼈대만 남아 평지 위에 숯 덩어리만 잔뜩 모아놓은 벌판 같았다. 철근만 앙상한 지프차의 차체에선 탄내가 진동했다. 불이 꺼진 뒤 이틀이 지났지만 곳곳에서 흰 연기가 올라왔다. 아이 둘을 데리고 지나가던 곤이치(43)씨는 “화재 당시 소방차 숫자는 물론이고 불을 끌 물도 부족한 데다 바람도 세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고 들었다”며 “정부는 아직 화재 사망자를 발표하진 않았지만, 이곳 주민 상당수가 죽었을 거라고 동네 사람들이 얘기한다”고 했다

 
 
지진 여파로 한 가옥의 지붕 기왓장이 인도 쪽으로 무너져내린 모습. /성호철 특파원

와지마의 모든 숙박 시설은 문을 닫았다. 객실 수 220실로 이 도시에서 가장 큰 호텔인 ‘호텔루트인’은 입구의 자동 도어에 ‘수동 개폐’라고 써붙였다. 해안에 인접한 7층짜리 호텔은 지진 첫날 쓰나미 경보가 울렸을 때 임시 피난 시설이었던 곳이다. 인근 주민들이 빠르게 대비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호텔의 직원은 “이 도시에서 숙박 시설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 호텔도 지진으로 건물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영업을 중단했고 언제 다시 문을 열지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대신 48곳의 피난 시설 리스트를 건네줬다. 이 직원은 “정원이 꽉 차서 받아주는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재난을 겪을 때마다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이름난 일본이지만, 전 세계에서 횡행하는 소셜미디어발 가짜 뉴스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NHK는 3일 지진 발생 후 ‘인공 지진’과 관련된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총 25만건(부정하는 내용 포함) 게시돼 많게는 850만회 열람됐다고 보도했다. 이번 지진이 자연재해와 무관한 인공 지진이라는 음모론이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