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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줄이고 음악 끄는 독일 크리스마스

0427 zion 2023. 12. 11. 07:58

조명 줄이고 음악 끄는 독일 크리스마스

[최아리의 구텐 탁 독일]

입력 2023.12.11.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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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현지 시각) 베를린 미테구의 운터덴린덴 거리. 이맘 때 불이 들어오던 가로수 조명이 아직 설치 되지 않아 어두컴컴하다./최아리 기자
기존 크리스마스 시즌 때 운터덴린덴 거리 모습/베를린시 홈페이지

지난 7일(현지 시각) 오후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앞 운터덴린덴 거리는 어두컴컴했다. 이맘때면 가로수마다 달린 조명 장식에 환하게 불이 들어와야 하는데도, 아직 설치하지 못한 조명 줄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조명 설치를 후원해 줄 곳을 찾지 못하면서 설치 장소가 줄어들었고, 설치도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명 없는 크리스마스’ 우려가 커지자 관할 미테구(區)에서 나서, 시정부 지원금 8만5000유로(약 1억2000만원)와 민간 모금 5000유로(약 710만원)를 확보했지만 2021년 크리스마스 마켓 조명 예산 16만유로(약 2억2740만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 독일이 겪고 있는 경제난 여파로 크리스마스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거리 풍경은 유독 볼거리가 많기로 유명하다. 유럽 주요 국가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11월부터 화려한 성탄 조명을 밝히고 먹거리와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리는데, 그중에서 역사도 오래되고 규모도 큰 독일이 원조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베를린 서쪽의 쇼핑가인 쿠담 거리도 예년 분위기는 느끼기 어렵다. 지난달 29일 예정대로 점등 행사는 시작했으나 광장에 설치해 온 호두까기 인형 등 조형물은 예산 부족으로 생략했다.

크리스마스 마켓 풍경이 썰렁해진 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요금이 치솟으면서 지방정부들이 앞다퉈 긴축 재정에 나선 여파가 크다. 베를린시는 시민들을 위한 에너지 보조금 재원을 마련하면서 지난해부터 크리스마스 마켓 지원 예산을 없앴다. 독일의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이 직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0.1%를 기록하는 등 경기 침체가 오래갈 조짐을 보이자 크리스마스 거리 풍경을 꾸미는 데 많은 금액을 기부하던 부동산 업계 등도 잇따라 액수를 줄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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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지역은 크리스마스 마켓의 점등 시간을 줄였다. 하노버는 원래 오전 11시부터 크리스마스 마켓 조명을 켰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시간 단축해 오후 4시에 켜고 있다. 매년 3개월간 조명을 켰던 슈타데도 올해 점등 시간을 3분의 2로 줄였다.

화려한 조명만 보기 어려워진 게 아니다. 레겐스부르크는 올해 크리스마스 마켓을 음악 없이 시작했다고 독일 매체 타게스샤우는 전했다. 독일음악저작권협회가 음악 이용료 산정 방식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이용료를 대폭 올려 비용 증가가 예상되자 ‘캐럴 없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선택한 것이다. 물가도 올랐다. 뮌헨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평소 3~4유로(약 4200~5600원) 정도 하던 겨울철용 멀드 와인이 인플레이션으로 6유로(약 8400원)까지 올랐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