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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구급차 길 막은 불법 주정차, 더 심각해져

by 0427 zion 2023. 10. 26.

1년 전 구급차 길 막은 불법 주정차, 더 심각해져

[핼러윈 참사 1년, 바뀐 게 없다] [2] 여전히 무질서한 이태원 도로

입력 2023.10.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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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핼러윈 참사 당시 구급차들은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현장 접근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로 인해 구조 골든타임을 놓쳤고 인명 피해는 더 커졌다. 뼈아픈 교훈을 얻었지만, 현재 이태원 일대의 불법 주정차 문제는 참사 이전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25일 나타났다. 이태원뿐 아니라 강남과 홍대 등 서울 번화가의 도로들은 불법 주차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태원역 2번 출구의 자정 풍경 - 20일 오후 11시 50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2번 출구 앞 도로. 승객을 태우려고 기다리는 택시들이 가장자리 차로 하나를 차지한 채 줄지어 서 있고, 중간중간 불법 주차한 승용차도 있었다. 왕복 4차로인 이 도로는 이날 밤 2개 차로만 겨우 차량 통행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오종찬 기자

용산구청이 국민의힘 김웅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태원 일대(이태원로 1~287)의 월별 불법 주정차 신고 건수는 올해 3월 146건을 기록했다. 참사가 일어난 작년 10월에는 135건이었다. 참사 직후 불법 주정차가 문제되자 건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가, 참사 발생 5개월 만에 늘기 시작했다. 이태원 일대의 불법 주정차는 올해 6월 166건, 8월 143건으로 작년 핼러윈 참사 당시 건수를 꾸준히 웃돌고 있다.

본지가 주말인 지난 14일 자정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2번 출구 일대를 돌아보니, 왕복 4차로 중 인도 쪽 2개 차로에 불법 주정차 차량이 200m가량 늘어서 있었다. 4차선 도로는 사실상 2차선으로 좁아졌다. 이곳은 핼러윈 참사가 일어났던 바로 그 현장이다.

도로가 좁아져 늦은 밤임에도 차량 정체가 일어났다. 심야버스와 택시, 일반 차량이 도로 위에서 뒤엉켰고 곳곳에서 경적 소리가 들렸다. 일부 시민들은 도로에 주정차된 차량 사이로 빠져나와 무단 횡단을 했고, 도로를 달리던 차량이 급정거하기도 했다. 서울시 교통정보시스템(TOPIS)에 따르면, 이날 밤 이태원로는 평균 시속 10㎞ 수준으로 서행과 정체를 반복했다.

그래픽=백형선

이태원 일대 이면도로도 곳곳에 불법 주정차 차량이 보였다. 택시 기사 김용호(60)씨는 “이태원만 오면 도로에 주차한 차들 때문에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꽉 막히고 취한 사람들도 뛰어다닌다”며 “이태원이 작년 사고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남의 고통이라고 벌써 잊어버린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용산구 관계자는 “코로나 종식 이후 날이 풀리고 유동 인구가 늘어난 만큼 불법 주정차 신고 건수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구청에서는 민원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 요원이 단속을 진행하고 불가피하면 견인 조치까지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불법 주정차는 젊은 층이 많이 찾는 다른 거리에서도 심각했다. 지난 24일 오후 6시쯤 찾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먹자골목에는 ‘불법 주정차 단속’ 안내판이 있었지만, 거리 곳곳에 차량이 불법 주정차돼 있었다. 인근 유료 주차장에 주차 공간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골목에 불법 주정차했다. 몇몇 차량은 인도에 걸쳐 불법 주차를 해 보행로가 막힌 사람들이 인도를 내려와 차도로 걸었다. 술집을 운영 중인 이모(46)씨는 “여기 상인들에게 주차 금지 팻말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승용차나 오토바이가 제멋대로 가게 앞 인도를 침범해 주차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지난 24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4번 출구 앞 인도에도 승용차 3대와 오토바이 1대가 불법 주차되어 있었다. 인도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주차된 차량들로 3m였던 인도의 폭이 1m로 줄었다. 지하철역 인근 골목에서도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다수 보였다. 바닥에는 ‘보행자 우선도로’라고 적혀 있었지만, 불법 주정차된 차량으로 골목은 혼잡했다. 보행자와 차량이 불법 주정차로 좁아진 도로에 뒤섞이면서, 운전자가 경적을 울리거나 급정차하기도 했다.

같은 날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 통행로에도 승용차가 불법 주차되어 있었다. 차량 앞 유리에는 ‘과태료 부과 대상 자동차’라는 빨간색 단속 딱지가 붙어 있었다. 이 거리는 차량과 보행자 간 구분 없이 다니는 2차선 도로인데, 불법 주차 차량이 한 개 차로를 점령해버리면서 통행로 폭이 줄었다.

어린이 보호구역의 불법 주정차도 심각했다. 25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서교초등학교 인근 400m 길이의 일방 통행로에는 택배 차량과 승용차가 불법 주정차되어 있었다. 시민들은 주차된 차량을 피해 도로로 나와 걸었다.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좁아진 도로엔 음식 배달 스쿠터가 빠르게 지나갔다. 어린이들의 통학길이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불법 주정차 문제 해결을 위해 범칙금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뉴욕이나 런던 등 해외 대도시는 불법 주정차에 금전적 피해를 확실히 부과한다”며 “한국에서도 불법 주정차 시간에 비례해서 범칙금을 높여 불법 주정차 유인을 낮추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경찰은 오는 27~29일 이태원 일대의 교통안전 확보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태원로 4개 차로 중 1개 차로를 긴급 차량 전용 통행로로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경찰은 “대형 행사의 경우 보행 밀집도에 따라 펜스 등를 이용해 임시 보행로를 적극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