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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도 롤모델 삼은 나라...국토녹화 50주년, 獨서 다시 배운다

by 0427 zion 2023. 10. 29.

박정희도 롤모델 삼은 나라...국토녹화 50주년, 獨서 다시 배운다

 

이동훈 기자
입력 2023.10.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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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1일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외곽의 한 야산에서 목재수확기계(하베스터)를 이용한 목재수확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10월 11일 찾아간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 외곽 프라이징의 한 야산(野山). 이날 바이에른주정부 산하 산림연구소(LWF) 관계자의 소개를 받아 찾아간 야산에서는 목재수확(벌목)이 한창이었다. 작업현장에는 높이 30~40m 남짓의 독일 가문비나무들이 빼곡히 서있었다. 거대한 집게와 전기톱으로 무장한 목재수확기계(하베스터)는 굉음을 내면서 이들 가문비나무를 하나둘 거침없이 잘라냈다. 대당 가격만 60만유로(약 8억5000만원)에 달한다는 목재수확기계가 거대한 집게로 아파트 10층 높이의 가문비나무 밑동을 틀어 잡고, 집게에 달린 전기톱으로 목재를 토막내고 잔가지를 말끔히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잘라낸 아름드리 목재들은 야산 곳곳에 차곡차곡 쌓였다.

목재수확기계가 이들 나무를 잘라낸 까닭은 프라이징 일대 야산에 ‘나무껍질 딱정벌레’가 급속히 번지면서다. 기자와 함께 목재수확 현장을 찾아간 바이에른주 산림연구소 관계자가 잘라낸 가문비나무의 껍질을 보여줬다. 나무껍질 속에는 하얀 쌀처럼 생긴 나무껍질 딱정벌레 유충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관계자는 “기후변화로 올해는 가장 더운 10월로 해충들이 서식하기 딱 좋은 환경”이라며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벌목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나무껍질 딱정벌레는 나무 속까지 파고들지 않아서 베어낸 목재는 건축용이나 가구용도로 목재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다고 했다. 대신 가문비나무를 잘라낸 한편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어린 묘목을 심고 있었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는 연방국가인 독일의 16개 주(州) 가운데 산림면적이 가장 넓은 곳이다. 산림면적만 바이에른주 전체 면적의 37%에 달하는 260만헥타르(㏊)에 달한다. 바이에른주 곳곳에서는 이 같은 인위적인 수종교체가 수시로 이뤄진다.

현장 관계자가 휴대폰을 꺼내 딱정벌레 아이콘의 앱을 누르자 지도 위에 목재수확 작업이 진행 중인 곳과 이미 베어낸 목재를 쌓아둔 곳 등이 각각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현장 관계자는 “현장 작업자들은 이 앱을 통해 작업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고 말했다. 바이에른주 산림연구소의 쿠르트 아메렐러 부소장은 “어떤 숲은 그냥 놔두는 것이 좋지만, 더 강한 숲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는 것 역시 추천한다”며 “수종교체를 통해 나무를 섞음으로써 어린나무들을 더욱 잘 자라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독일 바이에른주 산림연구소 관계자가 ‘나무껍질 딱정벌레’ 유충으로 가득 찬 나무껍질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 모델, 박정희의 ‘국토녹화 계획’

올해 국토녹화 50주년을 맞이해 독일의 산림정책이 관심을 모은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3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국토녹화 10개년 계획(1973~1982)’을 세운 이듬해, 가장 먼저 국내로 초빙했던 것은 하이노 폰 크리스텐 박사 등 독일의 육림(育林)기술자들이었다.

‘국토녹화 10개년 계획’은 당시만 해도 민둥산이었던 한국의 산야(山野)를 녹색으로 바꾸기 위한 혁명적 계획이었다. 당시 국내 거의 모든 산은 오늘날 북한과 같은 민둥산이었다. 산에서 캐온 나무와 마른 낙엽 등을 아궁이 연료로 사용하면서 산에 있는 나무와 낙엽이 남아나지 않았다. 산으로 올라간 화전민들이 산에 불을 질러 밭을 만들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산림도 깡그리 훼손됐다. 나무가 사리지자 맨땅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토양이 유실됐다. 나무의 수분저장 기능이 사라지면서 조그만 비에도 산사태가 나서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기 일쑤였다.

하지만 ‘1982년까지 모든 국토를 녹화한다’는 웅대한 목표만 세웠을 뿐, 막상 국내에는 조림 기술과 경험을 가진 기술자가 사실상 전무했다. 이에 유럽 최고의 산림강국인 독일의 기술진을 국내로 급히 모신 것. 독일의 임목축적은 37억㎥로 유럽에서 가장 많고, ㏊당 임목축적은 336㎥로 오스트리아, 스위스 다음으로 높다. 산림청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국내로 급파된 폰 크리스텐 박사를 필두로 한 독일의 산림기술자들은 울산, 양산, 밀양, 청도, 강릉 등지에 머물면서 독일의 선진 산림지식과 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독일 바이에른주의 목재수확 현황을 보여주는 앱.

“한국 국토녹화, 전무후무한 성공사례”

당시 박 대통령이 미국이나 일본도 아닌 독일 산림기술진을 국내로 데려온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1964년 박 대통령의 서독(현 독일) 방문이 큰 영향을 줬을 것”이란 게 산림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함께 1964년 12월 대한민국 국가원수 최초로 서독을 국빈방문했다.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빌려 타고 옛 서독 수도 본으로 날아간 박 대통령은 하인리히 뤼브케 당시 대통령,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후 뒤스부르크 함보른의 파독 광부 숙소를 찾아 한 해 전인 1963년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를 눈물로 격려했다.

당시 서독을 찾은 박 대통령이 본에서 뒤스부르크까지 무제한속도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을 이용한 후, 그의 대표작 ‘경부고속도로’가 탄생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본과 뒤스부르크를 연결하는 아우토반 연변을 따라 늘어선 독일의 울창한 산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산림청 국제협력자문위원인 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는 “박정희의 1964년 서독 방문 경험이 국토녹화 계획을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며 “다만 먹고사는 우선순위에따라 고속도로와 제철소 다음으로 추진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독일 산림기술진의 지원을 받아 전국의 산야는 서서히 푸른색을 회복했다. ‘새마을운동’과 연계해 무연탄을 원료로 한 연탄이 급속히 보급되며 산림훼손은 눈에 띄게 줄었다. 화전민은 산에서 내려왔고, 무단벌목은 엄금됐다. 생존에 강한 아까시나무와 오리나무 등을 우선 식목해, 산사태를 막는 동시에 토양을 조성했다. 지금과 달리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아래 편재됐던 산림청 공무원들은 ‘산림간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른바 ‘인간송충이’들을 잡는 데 발벗고 나섰다. 산림청의 한 관계자는 “산림간수들이 말을 타고 다니면서 각 집에 쌓아둔 장작들이 불법적으로 모아진 것이 아닌지 감시하던 전설 같은 시절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민둥산이었던 전국의 산야는 울창한 녹음으로 뒤덮였다. 독일에서 유학한 한국임업진흥원 박수규 박사는 “녹화사업 초기만 해도 유엔 등 국제기구는 모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한국의 국토녹화 사업은 전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성공사례”라고 말했다.

다만 ‘전무후무한 성공사례’로 불리는 한국의 산림정책은 50년 만에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50년 전 빨리 산을 덮어 토양유실과 산사태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대량식재된 나무들을 경제성이 우수한 나무들로 바꾸는 것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국내 산림은 짧은 기간에 대량식재된 까닭에 수령이 거의 비슷하다. 산림 다양성을 위한 세대교체는 필수로, 이 과정에서 경제성이 떨어지는 잡목들도 솎아내야 한다. 산림청에서 권장하는 교체수종은 남부 지방은 편백과 참나무류고, 중부 지방은 낙엽송과 참나무류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의 막연한 반대와 지난 50년간 국토녹화를 단행하며 형성된 벌목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에 산림 세대교체는 벽에 가로막힌 실정이다.

 
 
독일 바이에른주 야산에서 수확한 목재를 수거하는 목재운반 트럭.

환경단체 벽에 막힌 수종 세대교체

반면 300년 이상의 산림경영 역사를 가진 독일에서 인위적 수종교체는 지극히 일상적인 산림경영 방법이다. 지난 10월 9일 옛 서독 수도 본에서 만난 연방 식량농업부 산하 산림국의 크리스토프 나이첼 박사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인 1713년 한스 카를 폰 칼로비츠가 ‘지속가능 산림경영’이란 말을 처음 제시했을 정도로 산림경영의 역사가 오래됐다. ‘산림경제학’을 쓴 폰 칼로비츠는 원래 광산 채굴책임자였는데, 광산 채굴을 위해 나무가 잘려나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지속가능’이란 화두를 던진 것이다.

나이첼 박사에 따르면, 독일 전체 국토면적(3575만㏊)의 32%에 달하는 1141만㏊의 광활한 숲도 대부분 인위적으로 조성된 숲이다. 소위 ‘자연림’이라고 불리는 숲들도 실은 여기서 번져나간 것들이다. 이는 독일의 역사적·정치적 상황과도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명목상 신성로마제국(800~1806)에 속해 있던 독일은 크고 작은 봉건영주들이 토목공사를 위한 목재 채취는 물론, 사냥을 위한 숲을 적어도 한두 개씩 가지고 있었다. 사냥은 일종의 군사훈련이자 영주의 위세를 떨치는 중요 행사인데, 사냥용 동물들이 서식하려면 반드시 먹잇감이 많은 울창한 숲이 있어야 한다. 이에 각 영주들이 경쟁적으로 숲 조성에 나선 것이 오늘날 독일에 울창한 숲이 우거지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독일 전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가문비나무 역시 인위적으로 선택된 수종이다. 독일 전체 나무의 약 25%를 차지하는 가문비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이는 바로 그 나무다. 나이첼 박사는 “독일 숲에 있는 나무의 평균 수령은 77년으로, 이 중 25%는 100년 이상된 나무”라며 “독일에서 가장 많은 가문비나무는 나무 자체가 가볍고 안정적이어서 건축용과 가구용으로 사용하기 좋아 선택된 수종”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독일 연방정부를 비롯해 바이에른주 등 16개 주정부는 지속적인 산림경영을 하고 있다. 제1·2차 세계대전의 전화 속에 나무가 뽑히고, 숲이 불타는 등 훼손된 부분도 상당하지만, 꾸준한 식목과 조림을 통해 숲을 늘려왔다. 나이첼 박사는 “1960년 이후에도 지속적인 조림을 통해 100만㏊ 이상의 숲이 증가했다”며 “지난 2003년부터 2012년까지도 5만㏊의 숲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솎아베기(택벌)’는 장려하지만 ‘모두베기(개벌)’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등 산림자원 보호에도 적극적이다. 모두베기는 일정 면적의 나무를 한꺼번에 베어내는 목재채취 방법으로, 벌채에 들어가는 인건비 등 작업단가가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산림을 모두 베어내면 집중호우 시 토양이 유실돼 토질이 떨어져 이후 수확량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도 적지 않다. 이에 독일에서는 이미 1900년대부터 원칙적으로 모두베기를 금지한다. 모두베기를 하더라도 최대 2㏊ 이상은 한꺼번에 베어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의 5㏊보다 더 엄격한 규정이다.

“산림기계화 위해 숲길은 필수 인프라”

‘숲길(임도)’ 역시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숲길은 산불예방 및 산불진화에 필요함은 물론이고, ‘솎아베기’를 위해서도 필수 인프라다. 일정 면적의 나무를 모두 베어낼 경우 숲길이 필요없지만, 필요한 나무만 솎아베려면 솎아낸 나무를 싣고 내려올 숲길이 필요하다. 특히 목재수확기계(하베스터)와 베어낸 나무를 실어 올 운반트럭이 진입하기 위해서도 숲길 확보는 필수다.

독일에서 숲길은 법적으로 산림의 일부로 간주되는데, ㏊당 숲길 밀도는 54.4m/㏊로 한국(3.97m/㏊)의 10배가 넘는다. 바이에른주 산림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목재수확 일이 힘들어 점차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이민자들이 대체하고 있다”며 “산림기계화를 위해서도 숲길은 필수”라고 말했다.

산림청의 한 관계자는 “국토녹화 50주년을 맞아 숲의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인데, 나무는 절대로 베면 안 된다는 인식이 머릿속에 너무나 강하게 퍼져 있다”며 “무작정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는 산아제한 정책을 너무 오랫동안 끌어서 저출산에 빠진 실수를 산림정책에서는 반복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독일의 도시숲 가꾸기100년 넘은 제철소도 숲으로 변신

독일 뒤스부르크의 란트샤프트공원. 과거 티센제철소가 있던 곳으로 현재 도시숲으로 탈바꿈했다. photo 이동훈

독일은 도시숲 조성에도 적극적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라인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공업유산도 도시숲으로 만드는 데 거침이 없다. 지난 10월 10일 독일 뒤스부르크에 있는 란트샤프트공원에 들어서자 녹이 슨 거대한 용광로와 아파트 30층 높이의 굴뚝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광로와 굴뚝 사이로는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가문비나무와 소나무, 너도밤나무를 비롯해 수많은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철광석과 석탄을 보관하던 창고에는 우드칩이 깔리고 그 위로 미끄럼틀 등 놀이기구가 놓여 있었다. 녹슨 용광로와 푸르른 공원.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독특한 풍광을 이루고 있었다. 라인강과 그 지류인 루르강이 합류하는 곳에 자리한 뒤스부르크는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독일 중화학공업의 중심지였다. 공원 역시 한때 전 세계 조강생산량 1위였던 독일 굴지의 철강기업 티센(현 티센크루프)이 쇳물을 뽑아 강철을 생산하는 제철소였다. 1963년 파독 광부들이 대거 투입된 딘스라켄의 로베르크광산도 이곳에 석탄을 공급하던 곳으로, 차로 20분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이듬해 서독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이 ‘눈물의 연설’을 했던 뒤스부르크의 함보른 광부 숙소 역시 이곳에서 불과 15분 거리다. 하지만 티센제철소는 지난 1985년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문을 닫았고, 한동안 폐쇄됐다가 이제 ‘도시숲’으로 변신했다. 과거 쇳물을 뽑던 제철소는 이제 맑은 산소를 공급하는 곳이 됐다. 뒤스부르크 주민들은 평일 오후나 주말에 이곳을 찾아 산책을 하고 스포츠 활동을 즐긴다.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근대 공업유산이 도시숲으로 변신해 새 생명을 얻은 셈이다. 공원조성은 숲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측면도 있다. 독일 연방 식량농업부 산하 산림국의 크리스토프 나이첼 박사는 “독일은 역사적으로 숲, 목재와 함께 커온 나라”라며 “모든 사람은 숲에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