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새 달라진 이재명 위상… 정치의 사법 예속화 가속
판사 한 명 판결에 울고 웃어
입력 2023.09.28.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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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3시 50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 정문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팡이를 짚은 채 걸어 나왔다. 교도관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한 이 대표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 “아직 잠 못 이루고 이 장면을 지켜보고 계실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전날 밤부터 현장에 대기하고 있던 민주당 현역 의원 40여 명과 ‘개딸’ 지지자 500여 명은 서로 얼싸안으며 ‘이재명’을 연호했다. 반면 한편에서 ‘이재명 구속’을 외치던 국민의힘 지지자 30여 명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정치권 관계자는 “스포츠 경기 생중계 장면 같았다”고 했다.
지난 21일 149명의 국회의원들이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이후 이날까지 한국 정치는 한 명의 지방법원 부장판사 입만 쳐다보며 멈춰 섰다. 그 사이 국회의 본회의와 상임위 회의 일정은 모두 취소됐다. 판사의 영장 기각으로 입법부의 정치적 결정이 사실상 뒤집어진 셈이 됐지만, 민주당은 “정의가 승리했다”고 외쳤다. 반면 국민의힘은 “법원이 개딸에 굴복했다”고 비판했다. 정치의 극단 대립이 이어지면서 판사 한 명의 결정에 정치권 전체가 좌우되는 ‘정치의 사법 예속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정치권에선 “만약 ‘구속’ 결정이 나왔으면 여당이 ‘정의의 승리’, 야당이 ‘정권에 굴복한 법원’ 입장을 냈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날 여야 관계자들은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고 했다. 오전 2시 23분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의 기각 결정이 알려지자마자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오전 2시 33분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입장을 냈다.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 역시 오전 3시 “검찰은 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고 논평을 냈다.
환호하며 악수하는 민주당 의원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야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정적을 칼로 찔러대는 피 칠갑의 정치쇼를 벌였는데 불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서사가 만들어졌다”(방송인 김어준) “한국 정치는 이 대표 불구속 전과 후로 나눠질 것”(안민석 의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정청래 최고위원) 같은 말도 나왔다.
국민의힘은 영장 심사 당시 소명된 일부 범죄 사실에 대해 ‘이재명 대표 사과와 당대표 사퇴’ 요구를 의결했다. 김기현 대표는 “유권석방 무권구속(권력이 있으면 석방, 권력이 없으면 구속)”이라고 했고, 윤재옥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처럼 거짓 선동을 한다”고 했다.
21일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여야의 시계는 26일 영장 심사에만 맞춰져 있었다. 양당은 “영장 발부는 99%” “60~70% 확률로 기각”의 상반된 전망을 내놓으며 판사 한 명의 결정에 ‘명운’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영장 판사가 한동훈 법무장관의 대학 동기”라고 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구속 결정이 나올 경우 ‘판사와 정권의 유착 탓’으로 몰기 위한 의혹 제기였지만, 또 헛발질을 한 것이다. 국민의힘 역시 기각 결정이 나오자 “편향적 김명수 체제 판사”라며 판사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현직 부장판사는 “소송법적으로 영장 심사는 본안 재판이 아니라 기각되고도 유죄, 발부되고도 무죄가 될 수 있다”며 “정치권에서 영장 심사를 월드컵 결승전처럼 만들어 놨다”고 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법원 결정으로 정치권이 휘청대는 게 아니라 극단의 정치로 국민 신뢰를 못 받고 있는 정치인들이 줏대 없이 입맛 따라 판결을 비판하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김명수 사법부’ 이후 법관들이 이념 편향성을 판결에 드러내도 되도록 내부 분위기가 바뀐 것도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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